[기획③] 충절의 고장 충남에 있어야 할 의병기념관 [굿뉴스365]

2022. 11. 21. 02:47굿뉴스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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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한, ‘존화복수(尊華復讎)’를 기치로 홍주에서 창의

[굿뉴스365] 충절의 고장 충남은 일제의 국권 찬탈에 가장 강력히 저항했던 지역이다. 1944년말 전국 인구 통계에 대비해 도내인구수 가운데 독립운동가나 의병을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이고 전체 참여인원으로도 경북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곳이다. 의병 활동만 보더라도 전국적으로 등록된 의병 가운데 5번째로 많은 의병을 배출했다. 하지만 의병활동 사항에 비해 충남은 단 한곳의 기념관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에 본지는 충남의 의병기념관 설립의 필요성과 이를 통한 도민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방안을 모색코자 한다. /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충남 의병 발생의 요인

2. 전국 의병활동

3. 충남지역 의병활동(을미 창의) 

4. 충남지역 의병활동(병오 창의)

5. 의병활동 기억공간 부재

6. 충남 의병기념관의 건립 필요성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동학혁명을 빙자해 군대를 파견하고 청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구제도를 일거에 바꾸는 갑오경장(1894년)을 단행했다.

 

그러나 조선의 주도 세력인 유림은 일본이 주도했던 경장에 반대해 곳곳에서 저항했다.

 

특히 경장을 통해 기존의 복제를 바꾸고 일본에 비협조적인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1895년)이 일어나자 전국에서 일본의 만행을 처벌하라는 상소가 빗발쳤고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의병들이 일어났다. 여기에 더해 조정이 단발령을 선포하자 의병활동은 더욱 거세게 일었다.

 

당시 유림은 외세에 맞서 척사(斥邪)를 주창했고 이들은 의리론에 입각해 외세에 대항한 것이다.

지산 김복한선생 / 제공=홍성군

충청권에선 대표적으로 남당 한원진의 호론계열인 남당학파, 연재학파 등이 거의(擧義)와 순절(殉節)로 의리를 보였고 낙론계인 간재 전우의 간재학파는 자정(自靖)의리로 일제에 대항했다.

 

이들 외에도 화서 이항로의 학맥을 잇는 화서학파는 강원과 충북에서 활동하며 의암 유인석, 면암 최익현을 중심으로 위정척사론에 바탕을 두고 의병을 일으켰으며 전라도의 노사 기정진의 문인 중심의 노사학파, 경상도에선 한주 이진상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한 한주학파가 의병활동에 참여했다.

 

남당학파는 한원진 이후 한간 김한록과 운평 송능상 등이 호론계를 이끌었으나 정치적으로 벽파의 거두였던 김한록과 벽파세력인 사촌누이 정순왕후(영조의 계비) 사후 몰락해 세가 크게 줄었지만 심재 송환기, 강재 송치규에 이어 지산 김복한 선생이 남당의 학맥을 이어갔고 송치규의 문인인 송달수를 통해 연재 송병선, 심석재 송병순으로 우암 송시열의 가학을 이어가는 연재학파로 발달했다.

 

반면 외암 이간 선생의 낙론계열은 율곡을 사숙한 농암 김창협과 삼연 김창흡, 도암 이재를 중심으로 발달해 미호 김원행으로 연결됐고 근재 박윤원을 거쳐 매산 홍직필에 이어 고산 임헌회가 간재 전우에게로 학통을 이었으며 이들은 자정의리를 주장했다.

 

충남에서는 홍주의병에 앞서 공주부 진잠현감 출신 문석봉이 공주 유성(현 대전광역시 유성구)에서 명성황후 시해와 폐비조칙을 ‘천고에 없는 대변(大變)’이라며 반발해 ‘국수보복(國讐報復)’을 기치로 9월 18일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단발령이 공포되자 지산 김복한과 그의 이종형인 복암 이설, 그리고 홍주향교 전교인 안병찬 등이 주동이 되어 홍주에서 거의(擧義)하게 됐다.

 

충남의 을미의병을 주도한 이들은 ......

 

남당 한원진선생을 비롯 한간 김한록과 운평 송능상 등 호론계 인물을 배향한 홍성 양곡사 / 사진=송태은 기자
지산 김복한선생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홍성 추양사 / 사진=송태은 기자

 

 

 

[기획③] 충절의 고장 충남에 있어야 할 의병기념관

김복한, ‘존화복수(尊華復讎)’를 기치로 홍주에서 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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